
1. 일본식 종말론
중학생 시절 과학도서목록이라고 꽃혀 있는 서가에서 노스트라다무스의 예언서를 해석한 책을 보았다(어째서 이게 과학도서목록에 있었는지는 나도 몰라). 그 후 나는 꼬맹이 주제에 종말론에 제대로 꽂히고 말았는데, 그것은 고삼때까지 기껏 공부해 놓았는데 세계가 멸망해서 대학도 못가고 헛된 인생을 살게 운명지어진 저주받은 81년생이라 그랬던 것 같다.
그 책은 두 권으로 이루어져 있었는데, 첫 번째 책은 뭐 그냥 평범한 노스트라다무스 예언 해설서로 그랬다 치고(세계멸망에 대한 아주 평범(?)하고 전형적인 해석이 되어 있었다. 1999년 앙골모아가 어쩌구 공포의 대왕이 어쩌구) 두 번째 권부터 본격적인 허위망상 종말 씨리즈로 스토리 가닥이 잡혀 있더라. 이게 가관인 것은 노스트라다무스의 예언을 이용해 지구멸망과 기독교의 심판론(특히 요한계시록)을 짬뽕해 소설을 써놓았으면서, 그걸 소설이라 안하고 태연자약하게도 진짜 있을 법한 양 굴었던 것이다. 그걸 읽고 있던 어린 놈의 중학생이 뭘 느끼겠어. 난 당시만해도 교회에 다니고 있었고, 예수재림이 어쩌구 하면 당연히 미래에 일어나기로 예정되어 있다고 철썩같이 믿어버리고야 말았는걸. 중학생 여리디 여린 마음에 흙발로 쳐들어온 거지.
다시 기억을 떠올려 보니 그 책의 저자는 일본인이었던 것 같다. 여하튼 여러모로 일본스러웠던 책인 듯했다. 과학도서 문집에 뭔가 사이비스러운 기운을 풀풀 풍기던, 마치 '물은 답을 알고 있다'나 '혈액형 성격론'과 같은 지극히 일본식 사이비과학스러운 종말론 책이었던 것이다. 이 사이비스런 냄새가 물씬 풍기는 종말론은 단박에 '아 일본이구나'라고 느껴질 만큼 굉장히 특이한 감성이다(적어도 나에게). 이십세기 소년은 '그리고 세계는 멸망했다'라는 대사가 유명한, 바로 그 세계 종말 만화다. 이 작품에서 '친구'라는 집단은 사이비 냄새의 진국이다. 사이비종교의 광신자들이 결국 인류를 멸망시키는 내용이다. 그리고 일본엔, 이것의 현실 버전으로 '오옴진리교 독가스 테러사건'까지 존재한다.
아 물론, 미국도 종말론 같은 건 많다. 와치맨 같은 것도 크게 보자면 종말론적인 내용이고, 아마게돈이니 딥임팩트니 투모로우니 하는 영화들도 말할 것도 없다. 근데 이런 작품들은 하드SF적 성향이 흠뻑 묻어 있어서, 독자들을 분석시키고 이해시키려 든다. 궤도가 어쩌고 지구온난화가 어쩌고 지하로 숨으면 산다느니 뭐한다느니. 그런 데서 사이비스런 광신이 생길 리 없다. 미래에 지구가 멸망하는 걸 믿게 해야 무서운 거지, 안그러면 그게 뭐 무섭나. 걍 씨쥐 보는 맛에 보는 거지. 하여간 일본식 종말론은 묘하다. 접하게 되면, 중학생 시절 당시의 가심떨리는 (그러면서도 약간은 사이비스러운) 공포감을 다시 느낄 수 있다.
2. 세상를 구하는 락
'20세기 소년'은 결국 잊혀진 락커가 세상을 구했다. 잭 블랙의 Tenacious D도 기타 한대로 악마를 무찌른다. 아 참, 디트로이트 메탈 시티의 클라우저 2세도 '안티테제'격으로 세상을 구한다고 할 수 있지.
락이 세계를 구한다는 클리셰는 6~70년대 락의 감성이 80년대의 헤비메탈을 지나 21세기 라디오헤디즘에 의해 비꼬아진 결과물이다. 60년대 70년대의 러브 앤 피스는 점점 극단적으로 기괴해지면서 결국 80년대의 헤비메탈과 데쓰메탈의 시대에 도달했고, 천둥의 기타소리와 땀투성이의 마초들은 뭐든지 할 수 있어서, 지옥에고 갔다올 수 있고, 여자를 맘대로 강간해도 되고, 악마의 피를 마시는 둥 뭐 그렇고 그런 노래를 불렀던 것이다.
근데 이게 좌절감과 파라노이드에 시달리는 21세기 라디오헤드들은 이해못할 감성이라, 한 마디로 하자면 아버지뻘들이 불러제꼈던 그 노래들이 너무 오바지랄인 것이다. '뭐? 누구를 강간하고 어쩌구? 난 겨우 Creep밖에 안 되는걸. 난 안드로이든데 그걸 할 수가 없지.' 그래서 뭐 락은 뭐든지 할 수 있으니, 까짓 세상 하나 못 구하겠냐 하고 비꼬는 거다. 잭 블랙의 '악마를 무찌르는 이 세상 최고의 노래'도 그거고, 지옥에서 엄마아빠를 강간하고 어쩌고 하는 크라우저 2세도 그거다. '데쓰메탈 졸라 우습지?' 하는 거다.
그러면서도 그들은 선배에 대한 존경심을 버리지 않는다. 이래저래 어찌됐든 락은 결국 세상을 구한다. 이리저리 채이고 세상사에 찌들고 멸시받고 결국 테러리스트까지 된 켄지도 결국 세상을 구했잖냐. 락이 세상을 구하는 얘기, 게다가 관계자의 아들이 그걸 듣고 여자를 구한 담에 결혼하고 또 자식을 낳아서 천재를 구하고 천재가 세상을 구해서 결국 락이 세상을 구했다 라고 하는 꽈배기같고 허황된 얘기는 '내가 어제 엄마 아빠를 죽이고 그 시체를 강간했어'라고 수줍은 소년이 말하는 이야기와 '허황됨'에서 일맥상통하지만, 좀 더 감동적이다. 그게 또 매력인게, 허튼 구라같은 얘기에서 감동을 느낄 수 있다는 게 또 락의 매력이지 않는가.
3. 이해받지 못하는 자의 슬픔
하필이면 섹스피스톨스보다도 먼저 펑크를 해서 아무도 이해 못하고 그래서 주눅든 그들의 어깨가 슬펐다(섹스피스톨스는 마약먹고 개지랄 폈는데 말이야). 하필이면 존 케이지 1년 전에 피아노 앞에 가만 앉아서 예술입네 깝죽대던 무명 피아니스트는 '무명'이기 때문에 묻혀버렸고, 1년 후에 서울역에서 노숙하면서 존 케이지의 3분 44초를 들었다. 이 세상 최고의 초천재 과학자가 석사때 우주초특급 방정식을 만들어서 모든 우주를 기술했는데, 논문을 내니까 아무도 이해하는 교수가 없어서 초천재는 주눅들고 간신히 석사를 졸업한 후에 취직을 했다.
이것이야말로 정말로 슬픈 얘기. 그 초천재 과학자가 죽은 후에 그의 우주초특급 방정식이 세상을 구했으면 좋겠다.




덧글
류연 2009/08/13 04:22 # 답글
아 이거 보고 싶던데, 어디서 상영하는지 모르겠네요 ㅎㅎ
나비의일견식 2009/08/13 04:53 #
상암 CGV에서 봤습니다. 아직도 하고 있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