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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난조로 길을 묻다

여친이랑 깨져서 허세부리며 시작했던 블로그질이 이제 3년을 지나갑니다. 이 삼년동안 이 블로그 '불복한나'를 찾아오셨던 모든 분들에 대해 감사드리며, 특별히 꾸준히 찾아서 댓글까지 달아주시는 분들에게 있어서는 더욱 더 깊은 감사를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근데 어짜피 찾아오시는 분도 얼마 안 되지만 어짜피 제 성품이 답글을 성실히 달아주는 거나 친히 답글을 다신 분의 블로그에 방문해 뭔가를 쓴다거나 하는 데 있어서 공포에 가까운 부끄러움을 가지고 있는 저에게, 여러분께 댓글을 달아주셔도 한참 후에나 그에 대한 답글을 단다든가(그것도 무성의하게), 절대 남의 블로그에 댓글 같은 거 안단다던가 하는 저의 불친절에 대해 언젠가 사과의 말씀을 올리고 싶었답니다. 전에도 이오공감인가 뭔가 하는 데 저의 쓰레기 글이 올라서 하루대박을 쳤는데 하나하나 답글 달기 존나 귀찮더라고요.

뭐쨌든 저쨌든 이 불친절하기로 무명한 블로그가 한RSS 구독자 11명에(나 포함) 평균 하루 방문자 20명인 거대 블로그로 성장했다는 데에 대해서 뿌듯한 감정을 가지고 있답니다. 그 동안 저는 과거에 성장한 만큼 더욱 성장했고, 그만큼 3년 전의 나와 지금의 나는 많은 차이가 생겨버렸습니다. 오늘 이 시간에 과거의 나를 돌아봄과 동시에, 이 블로그의 나아갈 점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해 보는 시간을 한 번 가져보려고 합니다.

#. 이 블로그의 대표 컨텐츠였던 소설쓰기는 애초에 여친이랑 깨지고 허세부리기용으로 시작했으며, 그 첫 번째 타자가 따로 카테고리가 분류되어 있는 '슈퍼맨'이었습니다. 당시엔 그림까지 깨작깨작 그려내어 수많은 분들에게 문학적으로도, 회화적으로도 뛰어난 천재적인 소설이라는 평가를 들었습니다. 그 후로 허세스러움이 구석으로 정리되고 SF적 성향을 좀 추가하면서 단편소설쓰기는 개인적으로 매우 만족스러운 활동이 되었습니다. 다만 대중적으로는 전혀 관심을 받지 못하고(이것은 주로 천재들이 주로 겪는 숙명이죠. 이해하지 못하는 바는 아닙니다) 흥미를 잃어가고 있는 중입니다. 이 블로그 말고도 '한페이지 단편소설'에 투고를 해본 적도 있습니다만, 그쪽 성향이 저와 맞지 않은 관계로 역시나 제게 무플 세례을 안겨주어, 관심을 접었습니다.

사실 이 소설쓰기의 시초는 군내 인트라넷의 '무나나라', '미완의 필름'에 대한 오마쥬였습니다. 당시 존나빠진 이등병이었던 전 무나나라와 미완의 필름을 탐독하며 초기 단편작을 쓰곤 했는데요, 이 홈페이지를 구석구석 뒤져 보시면 과거에 인트라넷에 올렸었던 그것들을 보실 수 있을 것입니다.

현재 '판타스틱'에 투고용으로 대하 장편 SF를 집필중입니다만, 너무나 방대한 스케일로 언제 완성될지 몰라 (내가 다 쓰느냐 판타스틱이 폐간되느냐) 노심초사하고 있는 중입니다.

#. 계속해서 책을 많이 읽고 있으며, 열심히 읽으려고 합니다. 한때는 진화론과 진화심리학에 눈독들였는데, 현재 관심사는 피터 싱어의 윤리학과 심리·과학철학, 뇌과학이며 SF 고전과 신간들도 꾸준히 보고 있답니다. 근래 발견한 보석같은 SF는 스타니스와프 렘의 '사이버리아드'입니다. 이 책의 독창성은 정말 눈이 멀 정도로 휘황찬란하며, 특히 시를 지어내는 기계 이야기는 바짓가랑이가 촉촉히 젖어올 정도입니다.

피터 싱어라는 철학자는 계속해서 내 마음에 차고 있습니다. 채식주의를 시도해 보았고(지금은? 이라고 물으신다면 할 말은 없습니다만 하여튼 꾸준히 노력은 하고 있습니다) 기부를 하고 있고, 피터 싱어의 책에 대한 서평을 몇 편 썼습니다. 뇌과학은 전공과 얽혀서 몇 가지 보고 있는데, 어쨌든 교양과학책으로는 머리를 울릴 만한 정도의 책은 아직 없는 것 같군요.

재미있는 사건이 있었죠. '채식주의 똥'이라고 주장하는 블로거랑 싸웠는데, 놀랍게도 이름 깨나 알려진 블로거고, 많은 사람들이 그의 주장에 동조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또 그 분의 주장이 책을 깨작깨작 읽으면 헛지식만 늘어서 나한테 뻘플이나 다는 찌질이가 된다, 그렇기 때문에 책을 읽지 말라, 인데,

가장 한심한 점은 저런 어처구니없는 주장에 동조하시는 분들이 정말로 많다는 점이죠.

#. 정말로 성숙한 사회가 되려면 무엇이 필요할지에 대해 매일 진지하게 고민하고 있습니다. 특히 우리 대통령 가카께서 뽑히고 난 후로 절실하게 고민하고 있죠. 예를 들면 이런 겁니다.

왜 사람들은 창조론을 믿을까?

왜 사람들은 출처없는 지식을 믿을까?

왜 사람들은 거짓된 정보에 더욱 더 쉽게 현혹될까?

모든 국민이 많은 책을 읽고 질좋은 고등교육을 받아 알맞은 정보를 취사선택하여 자신의 대표자도 잘 뽑아 나라가 부강해진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운하의 비경제성과 환경 파괴적 본성을 잘 파악할 수 있다면, 경제를 살리겠다는 저 공약이 지켜질 수 있을지 모든 국민들이 예측할 수 있다면, 불법 시위와 민주 시민의 활동의 구별을 모든 사람이 정확히 내릴 수 있다면 정말로 좋은 세상이 되지 않겠습니까? 여러 가지의 활동을 통해 나 하나의 힘을 조금이라도 보태고 싶었고, 그래서 여러 군데에서 잘난척 좀 떨어 보았습니다만(큰 예로 디씨 과갤의 공지에 올라있는 교양과학책 어쩌구 하는 거), 결국 제가 내린 결론은 '나 혼자 힘으론 역부족'이라는 것이었습니다. 어쨌든간에 그 유명한 사람이 '책을 읽지 마라'라고 말하니까 그 얼토당토않은 주장에 많은 사람들이 동조하는 것을 보았거든요.

게다가 나마저도 여러가지 부족한 점을 노출하고 내 자신이 스스로 그것을 깨닫게 되면서 이 고민도 풀리지 않은 채로 남아있습니다. 여러모로 급변한 정치적 상황에 나 자신도 어쩔 줄 몰라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 계속해서 절실히 느끼고 있는 것은, 어떤 국가에도, 민족에도, 인종에도, 단체에도 속하지 않은 한 개인이 존재해야 한다는 점입니다. 최근의 연예인 욕설과 도미 사건, 흔한 떡밥인 동성애자 담론, 성차별, 외국인 노동자 차별 뿐만 아니라 해묵은 얘깃거리인 인종과 우생학, 종교, 민족 투쟁 또한 모두 이 문제로 귀결됩니다. 집단이 어떻든간에 그 안의 한 인간을 보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월드컵은 좀 재미없어지겠지만.

어려운 일입니다. 우선 인간 본성에 반합니다. 하지만 누구나 지키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 본능적인 감정을 억누르면서라도 기를 쓰고 지켜야 하는 것이 바로 이것입니다. 그 이유는, 너무 간단하게도, 남에게 피해를 끼치지 않기 위해샤입니다.

#. 큐브과학연구소(http://cubesci.tistory.com)은 계속해서 가동중입니다. 하지만 여전히 알아듣는 사람은 없군요.


by 나비의일견식 | 2009/09/19 22:54 | 장난조로 길을 묻다 | 트랙백 | 덧글(3)

[도서]물에 빠진 아이 구하기 - 논리적으로 윤리적인 사람이 되기

물에 빠진 아이 구하기
피터 싱어 지음, 함규진 옮김 / 산책자







피터 싱어는 쉬운 철학자다. 철학이란 게 뭔가? 한 쪽에선 노자니 장자니 하는 호호할배들의 구절들을 줄줄히 암기하고 있지 않으면 안될 것같은 분위기이고, 또 어디선 '에피스테메'니 '기관 없는 신체'니 하는 말 그대로 정신나간 정신분열적 얘기들을 두서없이 떠들고 하는 와중에, 쉬운 철학자란 게 있을 수나 있나? 칼빵 깨나 꼽아본 조폭이 이제부터 좀 착하게 살아보고 싶어서 그나마 유명하고 '쉬워 보이는' 칸트 정도 참고한다고 해도 뭔 의지의 준칙이 주관적인 동시에 보편적인 법칙이 어쩌구 해대는데 이게 도통 뭔 소린지 알게 뭔가. 피터 싱어는 고기를 먹지 말라 아니면 돈을 내놓고 기부를 해라 식으로 딱부러지게 말해주니 얼마나 좋은가.

하지만 쉽다고 얕보면 안 된다. 그의 쉬운 실천철학에 앤간한 내공으로는 반박할 수 없는 논리의 흐름이 숨어 있기 때문이다. 하늘에 계시가 내려와 간음하지 말고 네 이웃의 물건을 탐하지 말라고 하셨던 종교의 여러분들께서는 네발 달린 짐승이야 하늘에 계신 우리(니네) 아버님이 내려주신 선물이니 감사히 먹고으면 되지 뭔 채식주의같은 요상한 좌빨스러운 주장을 하는 사람들을 향해 쯧짯짯 혀나 차겠지마는, 그런 종교적 도그마 없이 던져진 현존재분들이 착하게 살고 싶다고 피터 싱어의 논리를 하나하나 접해나가다 보면 기존에 배웠던 관습적 윤리관이 그의 논리적 결론 앞에 와르르 무너져 내리는 것을 보고 아연실색하게 된다. 고기를 먹으면 나쁜 놈이라고? 기부를 안 하면 나쁜 놈이라고? 낙태를 한다고 그렇게 나쁜 놈은 아니라고? 그런데 그 논리를 반박할 수가 없잖아!

쉽게 말하자면 피터 싱어의 스타일은, 당연한 걸 당연하게 생각하고, 그걸 끝까지 논리적으로 밀고 나가서 당연해 보이지 않은 것도 당연해야 한다는 결론에 도달하게 만드는 것이다. 번역서 제목으로 쓰인 '물에 빠진 아이 구하기'가 가장 쉬운 예이다. 아이가 물에 빠졌다. 넌 구할 거야? 물론. 이 당연한 윤리적 실천이 단어만 조금 바뀐다고 해서 가치가 달라지진 않겠지? 물론!! 그렇다면, 지금 당장 아이가 가난 때문에 죽을 것 같애. 그러므로 넌 그 아이를 살려야 해. 아니 이럴 수가!

논리라는 게 뭔가. 일관성을 말하는 것이다. 내가 기독교적 도그마에 따라 살 것이라고 결심했으면, 남의 간음을 불륜이라 비판하면서 내 간음을 로맨스라 칭하면 안 되는 것이다. 내가 이 세상의 모든 생명체의 고통의 총량을 감소시킨다는 공리주의적 입장을 가진다면, '논리적으로 당연하게도' 일관적으로 인간에서부터 닭, 소, 돼지 등의 동물에까지 그 기준을 적용시켜야 한다. 아동 폭력에 눈물흘리면서 동시에 삼겹살을 구우면 안 되는 것이다. 피터 싱어는 이런 사람을 종차별주의자라 칭한다. 유신론자보다도 논리적 일관성이 떨어지는 사람이다.

윤리적으로 사는 데 논리가 무슨 상관이야! 라고 어떤 사람이 외친다. 사실, 이 사람은 지금까지 자기가 남부끄럽지 않게 선한 삶을 살아왔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특별히 기부를 하거나 채식을 하거나 한 건 아니지만(사실 그는 고기를 무척 좋아한다!) 지금껏 살아온 대로 지하철에서 노인들에게 자리를 적극적으로 양보하거나, 어려움에 처한 이웃을 팔소매를 걷어부치며 활발히 도와줄 정도로 훌륭한 심성을 가진 사람이다. 그런데 피터 싱어에 의해, 그는 졸지에 나쁜 사람이 되었다. 고기를 많이 먹고, 아프리카의 죽어가는 아이를 모른 체 했기 때문에. 정말로 윤리에, 도덕에 논리가 무슨 상관인가?

정말로 고민이 되는 순간은 이 때이다. 피터 싱어의 말대로 자신의 윤리관에 논리적 일관성을 추가하여 생활방식을 대대적으로 뜯어고칠 것인가, 아니면 지금껏 살아온 대로 착하게 살지만 고기도 먹고 기부도 안하는 위의 어떤 사람같은 종차별주의자로 살 것인가. 이것은 자신의 선택이다. 누가 뭐라 하지 않는다. 다만, 내 경우엔 논리적 일관성을 지켜 내 윤리관을 수정한 것이 맘 편했다. 내가 어릴 적부터 이상했던 점은, 인간들은 인간이든 식용이 아닌 동물이든간에 고통 반응을 보이면 불쌍하게 생각하고 생명을 빼앗는 행위에 대해 큰 죄책감을 가지는 반면, 소와 닭과 돼지에 관해선 '먹는 거니까 어쩔 수 없어'라고 하며 죽임에 대한 아무런 죄책감도 가지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기부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이다. 나는 이제 '남을 돕지 않는 것은 나쁜 것이다'라는 주장에 대해 반박을 할 수 없는 입장에 도달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효과적인 논박이 떠오르지 않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마음 편히 먹고 기부를 하기로 했다. 현재 나는 다달이 얼마를 기관에 기부하고 있다. 특별히 아프리카의 아이들이나 점심을 굶는 결손 가정의 아이들이 불쌍하다고 느끼는 건 아니다. 그냥, 논리적 비일관성이 참을 수 없는 것이다.

이 책을 읽는 여러분들도 무언가 반박거리를 찾아 보라. 물론 몇 가지 반박에 대한 피터 싱어의 대답이 책에 실려 있기도 하다. 그 질문을 피해서 독창적인 반박을 생각해 보라. 논리적 일관성을 갖추면서 기부하지 않아도 될 정당한 이유를 찾아내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현재 세계적으로 가장 논쟁적이고 유명한 윤리철학자를 이긴 사람이 된다. 그렇게 된다면, 기부를 하지 않아도 좋다. 그게 아니라면, 웬만하면 기부할 기관을 한 번 찾아 보고 기부를 시작해라. 책에 나와 있는 웹싸이트 http://thelifeyoucansave.com에 한 번 가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뭔가를 시작할 시간이다. 겨우 논리적 일관성을 지키는 것만으로 세상이 아름다워 지는 것을 느껴 보라.

※ 이 글은 책에 나와 있는 대로 '나의 기부 사실을 널리 알리기'를 실천하기 위해 쓰여진 글이다. 일련의 심리학 연구에 의하면, 기부하는 행위를 널리 드러내면, 다른 사람들의 기부액도 같이 올라갈 수 있다. 말하자면, 기부한다는 사실을 겸양떨어 숨기지 말고, 만천하에 드러내서 자랑하라는 것이다. 나야말로 원래 인생의 모토가 겸손인 사람이지만, 이번만은 예외적으로 한 번 나의 위대함을 자랑해 본다. 나는 내 소득의 일부를 기부하는 훌륭한 사람이다! 그러므로 여러분들도 함께 하는 게 어때?

by 나비의일견식 | 2009/09/06 00:06 | 삶은 문화 | 트랙백 | 덧글(1)

피쉬 스토리 - 일본식 종말론 / 세상를 구하는 락 / 이해받지 못하는 자의 슬픔



1. 일본식 종말론

중학생 시절 과학도서목록이라고 꽃혀 있는 서가에서 노스트라다무스의 예언서를 해석한 책을 보았다(어째서 이게 과학도서목록에 있었는지는 나도 몰라). 그 후 나는 꼬맹이 주제에 종말론에 제대로 꽂히고 말았는데, 그것은 고삼때까지 기껏 공부해 놓았는데 세계가 멸망해서 대학도 못가고 헛된 인생을 살게 운명지어진 저주받은 81년생이라 그랬던 것 같다.

그 책은 두 권으로 이루어져 있었는데, 첫 번째 책은 뭐 그냥 평범한 노스트라다무스 예언 해설서로 그랬다 치고(세계멸망에 대한 아주 평범(?)하고 전형적인 해석이 되어 있었다. 1999년 앙골모아가 어쩌구 공포의 대왕이 어쩌구) 두 번째 권부터 본격적인 허위망상 종말 씨리즈로 스토리 가닥이 잡혀 있더라. 이게 가관인 것은 노스트라다무스의 예언을 이용해 지구멸망과 기독교의 심판론(특히 요한계시록)을 짬뽕해 소설을 써놓았으면서, 그걸 소설이라 안하고 태연자약하게도 진짜 있을 법한 양 굴었던 것이다. 그걸 읽고 있던 어린 놈의 중학생이 뭘 느끼겠어. 난 당시만해도 교회에 다니고 있었고, 예수재림이 어쩌구 하면 당연히 미래에 일어나기로 예정되어 있다고 철썩같이 믿어버리고야 말았는걸. 중학생 여리디 여린 마음에 흙발로 쳐들어온 거지.

다시 기억을 떠올려 보니 그 책의 저자는 일본인이었던 것 같다. 여하튼 여러모로 일본스러웠던 책인 듯했다. 과학도서 문집에 뭔가 사이비스러운 기운을 풀풀 풍기던, 마치 '물은 답을 알고 있다'나 '혈액형 성격론'과 같은 지극히 일본식 사이비과학스러운 종말론 책이었던 것이다. 이 사이비스런 냄새가 물씬 풍기는 종말론은 단박에 '아 일본이구나'라고 느껴질 만큼 굉장히 특이한 감성이다(적어도 나에게). 이십세기 소년은 '그리고 세계는 멸망했다'라는 대사가 유명한, 바로 그 세계 종말 만화다. 이 작품에서 '친구'라는 집단은 사이비 냄새의 진국이다. 사이비종교의 광신자들이 결국 인류를 멸망시키는 내용이다. 그리고 일본엔, 이것의 현실 버전으로 '오옴진리교 독가스 테러사건'까지 존재한다.

아 물론, 미국도 종말론 같은 건 많다. 와치맨 같은 것도 크게 보자면 종말론적인 내용이고, 아마게돈이니 딥임팩트니 투모로우니 하는 영화들도 말할 것도 없다. 근데 이런 작품들은 하드SF적 성향이 흠뻑 묻어 있어서, 독자들을 분석시키고 이해시키려 든다. 궤도가 어쩌고 지구온난화가 어쩌고 지하로 숨으면 산다느니 뭐한다느니. 그런 데서 사이비스런 광신이 생길 리 없다. 미래에 지구가 멸망하는 걸 믿게 해야 무서운 거지, 안그러면 그게 뭐 무섭나. 걍 씨쥐 보는 맛에 보는 거지. 하여간 일본식 종말론은 묘하다. 접하게 되면, 중학생 시절 당시의 가심떨리는 (그러면서도 약간은 사이비스러운) 공포감을 다시 느낄 수 있다.


2. 세상를 구하는 락

'20세기 소년'은 결국 잊혀진 락커가 세상을 구했다. 잭 블랙의 Tenacious D도 기타 한대로 악마를 무찌른다. 아 참, 디트로이트 메탈 시티의 클라우저 2세도 '안티테제'격으로 세상을 구한다고 할 수 있지.

락이 세계를 구한다는 클리셰는 6~70년대 락의 감성이 80년대의 헤비메탈을 지나 21세기 라디오헤디즘에 의해 비꼬아진 결과물이다. 60년대 70년대의 러브 앤 피스는 점점 극단적으로 기괴해지면서 결국 80년대의 헤비메탈과 데쓰메탈의 시대에 도달했고, 천둥의 기타소리와 땀투성이의 마초들은 뭐든지 할 수 있어서, 지옥에고 갔다올 수 있고, 여자를 맘대로 강간해도 되고, 악마의 피를 마시는 둥 뭐 그렇고 그런 노래를 불렀던 것이다.

근데 이게 좌절감과 파라노이드에 시달리는 21세기 라디오헤드들은 이해못할 감성이라, 한 마디로 하자면 아버지뻘들이 불러제꼈던 그 노래들이 너무 오바지랄인 것이다. '뭐? 누구를 강간하고 어쩌구? 난 겨우 Creep밖에 안 되는걸. 난 안드로이든데 그걸 할 수가 없지.' 그래서 뭐 락은 뭐든지 할 수 있으니, 까짓 세상 하나 못 구하겠냐 하고 비꼬는 거다. 잭 블랙의 '악마를 무찌르는 이 세상 최고의 노래'도 그거고, 지옥에서 엄마아빠를 강간하고 어쩌고 하는 크라우저 2세도 그거다. '데쓰메탈 졸라 우습지?' 하는 거다.

그러면서도 그들은 선배에 대한 존경심을 버리지 않는다. 이래저래 어찌됐든 락은 결국 세상을 구한다. 이리저리 채이고 세상사에 찌들고 멸시받고 결국 테러리스트까지 된 켄지도 결국 세상을 구했잖냐. 락이 세상을 구하는 얘기, 게다가 관계자의 아들이 그걸 듣고 여자를 구한 담에 결혼하고 또 자식을 낳아서 천재를 구하고 천재가 세상을 구해서 결국 락이 세상을 구했다 라고 하는 꽈배기같고 허황된 얘기는 '내가 어제 엄마 아빠를 죽이고 그 시체를 강간했어'라고 수줍은 소년이 말하는 이야기와 '허황됨'에서 일맥상통하지만, 좀 더 감동적이다. 그게 또 매력인게, 허튼 구라같은 얘기에서 감동을 느낄 수 있다는 게 또 락의 매력이지 않는가.


3. 이해받지 못하는 자의 슬픔

하필이면 섹스피스톨스보다도 먼저 펑크를 해서 아무도 이해 못하고 그래서 주눅든 그들의 어깨가 슬펐다(섹스피스톨스는 마약먹고 개지랄 폈는데 말이야). 하필이면 존 케이지 1년 전에 피아노 앞에 가만 앉아서 예술입네 깝죽대던 무명 피아니스트는 '무명'이기 때문에 묻혀버렸고, 1년 후에 서울역에서 노숙하면서 존 케이지의 3분 44초를 들었다. 이 세상 최고의 초천재 과학자가 석사때 우주초특급 방정식을 만들어서 모든 우주를 기술했는데, 논문을 내니까 아무도 이해하는 교수가 없어서 초천재는 주눅들고 간신히 석사를 졸업한 후에 취직을 했다.

이것이야말로 정말로 슬픈 얘기. 그 초천재 과학자가 죽은 후에 그의 우주초특급 방정식이 세상을 구했으면 좋겠다.

by 나비의일견식 | 2009/08/13 03:27 | 삶은 문화 | 트랙백(1) | 덧글(2)

영화 '똥파리'에 대해 무슨 이상한 소릴 하고 계신 겁니까?


영화 똥파리가 가족이니 핏줄이니 하는 고매하고 진부한 것들에 대해 힘들게도 썅욕들을 줄줄이 읊어대면서까지 당신들에게 얘기하고 싶었는줄 아십니까? 그까짓거 유치한 애들 만화에도 많이 나오잖아요. 부모한테 효도해라 가족이 최고다 집밖에 없어 등등. 물론 그 사람이 하고 싶은 얘기들 중에 그게 없었다고는 말 못하지만, 다 큰 어른이 그거 누가 모르나요? 그러는 그 순수하고도 감동적인 '가족'에 대해 얘기하는데, 왜 그렇게 앉은자리가 불편합니까? 예?

이 사람은 '같은편 때리기'라는, 사회적·구조적 모순에 대해 얘기하고 있는 겁니다. 만식이도 그러잖아요. 같은 편 좀 그만 패라고. 주인공이 같은편이어야 할 사람들을 때리고 돈뜯어내고 아빠를 줘패고 친구 엄마도 죽이고 그런 지랄맞은 모습들을 보고도 사회의 고착되어 있는 좆같은 면에 대해 욕할 생각 안하고 무슨 개뿔이 가족이고 핏줄입니까?

솔직히 말해 봐요. 이 영화가 감동적이었나요? 전 기분 좆같던데. 어째서 그들은 왜 그렇게 살고 있습니까? 같은편을 때리고 죽이고 미워하고. 무엇 때문에?

누가 그렇게 만들었습니까?

by 나비의일견식 | 2009/07/13 01:15 | 삶은 문화 | 트랙백 | 덧글(2)

73 - 쓸쓸하고 괴로운 인생을 살겠지만 2

그는 내가 만나본 사람 중 가장 이상한 생각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었다. 물론 직접 만나 보지는 못했지만 말이다. 그의 유명한 기행들은 사실 말 그대로 너무나 유명해서 굳이 내가 여기서 열거할 필요는 아마 없을 터이지만, 다만 내가 언급하고 싶은 것은 그 이상한 행위들을 피눈물을 쏟으며 지켜보았던 그의 지지자들의 마음이 그렇게 편치 않았을 것이 틀림없을 거란 사실이다.

어쨌든 그의 생의 초기 반생에 저지른(?) 이상한 행동들은 최소한 재기발랄한 면모라도 엿볼 수 있는 것으로 많은 사람들이 인정하고 있다. 돌이켜 생각해 보라. 사람들이(비록 소수일지언정) 그 정신에 충실하게 감복했는지. 정말 이상한 일이었던 것은 뭐냐하면, 그 아무도 생각하지 못했을 것만 같은 창의적인 발상들에게서 어떻게, 언급하기 진부할 정도로 고색창연한 정신들을 느낄 수 있게 했을까라는 점이다. 누구나 그 당시의 그를 보면 그렇게 느꼈을 것이다.

그런 그가 매우 적은 수의 지지자들만을(열광적이긴 하지만) 가지고 있었고, 그 이후로도 상식적으로 보이는 행동들을 전혀 보이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어느날 갑자기 엄청난 수의 지지의 폭등을 등에 업고 이 세계에서 가장 위대한 사람으로 등극했다. 이 사태의 가장 놀라운 점은, 이 극적이고도 열광적인 지지에 사실상 그의 사상적 성향은 전혀 고려되지 않았었다는 점이다. 그는 당시에 널리 퍼져 있던 지긋지긋한 관행들에 반기를 들던 사람들이 대안으로서 선택된 것에 불과했으며, 그렇기 때문에 위대한 사람으로서 앞으로 그가 펼치게 될 놀라운 사건들은 애초부터 불행의 씨앗을 내재하고 있었다고 해야 할 것이다.

하지만 난 그가 위대한 사람으로 등극하게 된 이 사건이 이 세계가 가지게 된 최초의 행운이라고 말하고 싶다. 말하자면, 당시 사회에 뿌리깊게 박혀 있던 정신들이 너무나 퇴폐적인지라, 그것들을 언젠가 뽑아내지 않고는 누구나 견딜 수 없을 정도로 심각한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누가 그 일을 한단 말인가? 검은 사회에선 위대한 사람마저 어두운 빛을 띠게 마련이었다. 정말로 우연히 일어났던 일이고, 아마 평소의 시스템이었으면 절대로 일어나지 않았을 사건이지만, 모두가 잘못된 선택을 하는 바람에 놀라운 행운이 생겨버렸다.

자, 그가 위대한 사람으로 등극한 후에 했던 일들을 상기해 보자. 모든 것들에 영광의 밝은 빛이 드리워져 있는가? 절대 그렇다고는 말할 수 없다. 사실상, 그가 위대한 사람에 있었던 기간 동안 이 사회는 재앙에 가까웠다(혹은 재앙에 가깝다고 알려져 있다). 왜냐하면, 그가 위대한 사람이 된 후에도 절대 위대한 사람은 하지 말아야 할 정신없는 기행들을 쏟아냈기 때문이다. 그를 지지했던 모든 사람들이 혼란스러웠다. 그도 그럴 것이, 대다수의 지지자들이 그가 저지르고 있는 저 미친 짓들을 최초로 보게 된 것이기 때문이다. 그의 기행은 그의 평가를 계속해서 추락시켰고, 그는 놀랍게도 추락하는 자신의 위신을 바라보며 재미있어하는 듯 했다.

그의 비판 자체는 정당하지 못했다. 말하자면 비판은 비난이 되었고, 그 비난은 결국 또 다른 비난을 불러왔다. 말하자면 “저렇게 비난을 받는 것을 보니 저 사람은 미친게 분명하다”는 식의 비난이 이어졌던 것이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비난 자체는 그에게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않는 게 분명해 보였다. 그는 항상 만면에 미소를 띠며 또 다른 기행을 계획하곤 했을 것이다.

그리고 그의 시대는 끝나 갔다. 사람들은 결국 원래의 거칠게 얽힌 사람들 사이에서 위대한 사람을 만들어 냈고 그 새로운 사람은 사회의 어두웠던 옛 모습을 거의 완벽히 복원했다. 아마 몇백 년간은 이러한 사회가 이어질 게 분명했는데, 왜냐하면 결국 사람들은 그의 시대에 깨달은 것은 아무 것도 없기 때문이었다.  무엇이 옳은가에 대한 질문을 끊임없이 갈구하는 사람이 아니고는 그의 엽기적인 만행들의 의미를 알리가 만무했던 것이다. 지극히 비참한 블랙코미디를 써 놓고는 사람들에게 웃으라고 강요하면, 그 어느 누가 대사를 이해라도 할 것인가! 이것은 역사상 가장 어려운 극본이었던 것이다.

그의 말년은 그의 비극처럼 비참했으며, 난 이미 이런 결말을 예상하고 있었다. 그는 우주공간에 몸을 던져 의식이 없는 전자기파만 남겼다. 그를 추모하는 천억 명 정도의 사람들이 대규모의 물결을 만들고 있는 현 상황에서, 나는 그들 중 단 한 사람이라도 그를 진정으로 이해할 수 있었을까 하는 의문이 든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무엇이 옳은가 무엇이 그른가에 대해 사고하기보단, 무엇이 우리를 풍요롭게 하는가에 대해 사고한다. 나는 그렇지 않은 우주의 단 한 사람이다. 그도 아마 우주의 단 한 사람이었을 것이다. 나와 그에 뒤를 이은 또 다른 한 사람이 이 우주에 어디엔가 있을지도 모르지만 그것은 중요한 것은 아니다. 거의 모든 '단 한 사람'들이 각자 나름대로 쓸쓸하고 괴로운 인생을 살겠지만 그렇다고 뭐 어쩌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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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비의일견식 | 2009/05/28 07:51 | 나의 픽션들 | 트랙백 | 덧글(2)

72 - 쓸쓸하고 외로운 인생을 살겠지만

정말 일년 새에 많은 것이 변했다. 그들은 이제 결혼과 육아와 직장과 연봉에 대해서밖에 이야기하지 않았다. 어쨌든 그들도 어른이 되었다. 그러니까 난 친구들의 술자리 내에서도 별로 할 말이 없었던 것이다. 기대했었지만, 역시 여기서도 조금 더 외로워졌으며, 그냥 자기 애기가 뭘 먹고 뭘 싸는지 뭐 그런 얘기들에 맞장구나 몇 번 쳐주다가 눈치를 봐서 바람이나 쐴 겸 술집 밖으로 나왔다. 달은 밝았으나 또한 도시의 불빛도 밝았다. 나는 예전이 그리워졌다. 적어도 그들은 나와 이야기할 수 있는 것들이 있었다. 우주의 법칙이라던가, 의식과 자유의지라던가, 과격한 정치적 견해 따위, 어쩌면 세상과 동떨어진 것들에 대해서 이야기하곤 했다. 모두들 맞장구를 쳐주었다. 모든 것이 변했다. 나만 변하지 않았다. 무엇이 옳은가에 대해 열띠게 토론하던 그 때의 내 친구들은 이제 무엇이 옳은가가 아니라 무엇을 해야 살아남는가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나만 아직 그대로였다. 비참한 기분이었다. 아마도 이 기묘한 위화감은 내가 죽을 때까지 평생 따라다닐 것이다. 나는 과거에 어떤 결심을 했으며, 그 결심은 아직까지 유효하고, 내가 죽을 때까지 따라갈 것이기 때문이다. 난 계속해서 무엇이 옳은 일인가에 대해 끊임없이 사고할 것이며 또 그 사고한 결론대로 행동할 것이다. 내 친구들이 다 떠나간다고 해도 하는 수 없다. 그들을 탓하지는 않겠고 나를 변화시키지도 않을 것이다. 쓸쓸하고 외로운 인생을 살겠지만 뭐 어쩌겠는가. 지구상의 단 한 사람이라도 이렇게 살아야 함을 어쩔 수 있겠는가.

by 나비의일견식 | 2009/04/27 01:44 | 나의 픽션들 | 트랙백 | 덧글(4)

과학도서 추천 릴레이

http://basil83.egloos.com/4890390
http://lovos.egloos.com/2271423
http://liberatio.kr/2009/03/903/
http://www.nanael.net/396

과학도서 추천 릴레이의 바통을 넘겨받았습니다. 그래서 과학도서 세 권을 추천하겠습니다.

사실 제가 교양과학도서 덕후인 것은 제 주변 사람 몇몇만 알고 별로 없지요. 제 교양과학책 사랑은 남달라서, 교양과학책만을 한우충동 오거서만큼 읽었다고 떠벌리고 다니시는 그야말로 나름 유명하신 디씨 과갤의 꾸준글러 '교양과학'이란 분이 있는데, 이분과 키배떠도 꿀리지 않을 정도의 자신이 있을 정도입니다. 그래서 제가 모기불과 같은 책 안 읽은 티 막 내고 다니는 무식이 철철 넘치는 녀석들한테 책 좀 읽으라고 강조하는 거고요.

좀 더 유익하고 특이한 선정을 위해서 제 자신만의 선정기준을 잡아 봤습니다.

1. (적당히) 과학적일 것.

과학도서 추천하는 데 그 책이 과학적일 것은 당연한 소리지만 괄호 안에 들어간 '적당히'란 말은 말하자면 너무 과학적이지도 또 너무 비과학적이지도 않은 책을 뽑겠다는 것입니다. 너무 비과학적이지도 않은 책이란 건 뭐 그렇다쳐도 너무 과학적이지도 않은 책이란 건 이런 겁니다. 과거 연구들을 참조해서 사람이름과 년도를 나열만 하는 교과서같은 책, 물리학 법칙을 설명하기 위해 이공계생만 알아들을 수식을 존나 들이대는 책, 저자가 너무나도 슈퍼과학자인 나머지 이론중심적이고 저자 말고는 아무도 관심가지지 않을 분야를 말하는 그런 책 말입니다. 이런 책은 전공 교과서로서는 성공적일지 몰라도 교양과학책으로서는 아닌 것이죠.

2. 환상적일 것.

교양과학은 모름지기 읽으면서 소설과도 같은 박진감과 스펙터클함을, 때로는 눈물까지 짓게 만들 정도의 감수성을 가져야 한다는 것이 저의 지론입니다. 교양과학책의 역할은 지식을 쌓는 것이 아니에요. '재미있는' 지식을 쌓는 것이 목적입니다. 재미가 없는 책은 전공자들이 다 읽어줍니다. 우린 그런 재미없는 지식에 대해서는 걱정할 필요가 없지요.

3. 학제적일 것.

물리니 생물이니 지구과학이니 하는 분류는 근대 과학의 발상입니다. 그걸 아직까지 지키고 있다는 건 명백한 시대착오에요. 우리는 21세기에 살고 있습니다. 그런 것에 연연해 할 필요가 없지요. 카오스 현상을 연구하면서 목성 대적점에서 심장박동까지를 아우를 수도 있는 거고, 의식을 연구하기 위해서 양자역학에서부터 최신 의학 기술까지를 섭렵할 수도 있는 겁니다.

4. 철학적일 것.

말하자면 '철학적'인 거지만 제가 하고 싶은 얘기는 이런 겁니다. 우주에 대한 성찰, 인간성에 대한 고민, 학문에 대한 열정, 법칙과 아름다움에 대한 경외심 등등...




이런, 이게 바로 나야! 1
더글러스 호프스태터 외 엮고지음, 김동광 옮김 / 사이언스북스
나의 점수 :
적당히 과학적: ★★★★
환상적: ★★★★★
학제적: ★★★★★
철학적: ★★★

빨간 책 말고도 두 번째 권(파란색)이 더 있습니다. 더글러스 호프스태터라는 사람은 '괴델·에셔·바하'라는 경이적인 책을 쓴 사람이고, 공저자인 대니얼 데넷은 진화와 의식을 가지고 철학을 하는 철학자로 알려져 있습니다. 두 사람의 책들은 아래에 좀 더 말씀을 드리지요.

이 책의 주제는 '의식'입니다. 의식이라는 주제는 제가 단연코 말하는데 과학자라는 직업이 생긴 이래로 가장 도전적인 주제임이 틀림없습니다. 의식은 사밀성이라는 성질과 감각질이라는 성질을 동시에 가지고 있으며, 때문에 과학적 방법론이 원천적으로 접근하기 불가능합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왜 과학이 의식을 설명하려고 하냐면, 분명한 현상으로서 존재하기 때문이며, 존재한다는 틀림없는 사실을 가지고 있는 어떤 현상을 연구하지 않고는 못 배기는 성격들이시기 때문이죠.

책의 구성은 과거 이름난 작가들(스와니스타프 렘이나 보르헤스 등)의 SF와 환상소설들, 유명한 인지과학의 논문들(튜링의 튜링테스트나 네이글의 박쥐 논문 같은 거), 그리고 몇 편의 책의 저자들의 글이 실려 있고, 저자들의 해설이 뒤에 붙어 있는 형식입니다. 소설들 하나하나는 숨이 막힐 정도로 훌륭하며, 논문들은 말할 필요도 없을 정도로 유명한 논문들이라 (재미가 없을지언정)안읽을 수가 없으며, 특히 마지막에 실려 있는 호프스태터의 '아인슈타인=책 논증'은 정말 질질 쌉니다. 책을 덮은 후에는 바지가 촉촉해져 있는 것을 발견할 수 있지요.


마음의 진화
대니얼 C. 데닛 지음, 이희재 옮김 / 사이언스북스
나의 점수 :
적당히 과학적: ★★★
환상적: ★★★
학제적: ★★★★★
철학적: ★★★★★


대니얼 데닛은 철학자이며, 서문에도 이 책은 철학책임을 분명히 밝히고 있습니다. '적당히 과학적'에 별수가 적은 것은, 너무 과학적이어서 그런 게 아니고 별로 안 과학적이어서 그런 겁니다. 그러나 그 내용이 두루뭉술할지언정 생물과 진화와 지능과 의식에 대한 충분히 과학적인 주제들에 대해 다루고 있기 때문에 여기에 넣었습니다.

이 책의 큰 주제는, 말하자면 제목 그대로 '마음'이 어떻게 '진화'하였는가입니다. 철학적이라고 할 만한 부분은 진화론을 연구한 선대 연구자들의 참고논문을 무차별 싸이트하는 식이 아니고, '지향성'이나 '생산과 검증의 탑'과 같은 데닛만의 독특한 이론을 내세웠다는 점입니다. 철학책 치고는 매우 쉽고(사실 데닛은 쉬운 책을 쓰기로 정평이 나 있습니다), 두께도 얼마 안 되죠. 뭐 양 얼마 안 되는게 자랑은 아닙니다만 어쨌든.

사실 데닛의 책 가운데 더 유명한 책들(Consciousness Explained, Darwin's Dangerous Idea)같은 책이 있지만 번역이 안 되어 있습니다. 저도 사놓고 안 읽어서 책이 누래지고 있지요. 글쎄 뭐 이 책보다 훨씬 좋을 수도 있으니까 영어 좀 되시는 분은 읽어보시죠.

황제의 새마음 -상
로저 펜로즈 / 이화여자대학교출판부
나의 점수 :
적당히 과학적: ★★
환상적: ★★★★★
학제적: ★★★
철학적: ★★★★


두 권짜리 책입니다. 로저 펜로즈는 원래는 유명한 수리물리학자고 펜로즈의 타일이나 펜로즈의 삼각형 처럼 자기 이름이 붙은 뭔가그런 거까지 가지고 있는 사람입니다. 자, 이 사람이 '마음'에 대해 뭔가 썼다고 한데, 말하자면 양자역학의 마스코트 슈뢰딩거의 고양이 역설에서 뭔가 께름찍한 바로 그 부분을 의식의 신비를 통해 동시에 해결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그래서 양자역학의 신비도 풀고 의식의 신비도 풀고) 그런 시도로 출발한 책입니다.

그런 점에서 보건대 이 책은 양자역학+심리학의 학제적 주제 되겠습니다(안타깝게도 이 사람의 심리학 지식은 그렇게 대단하지 않습니다만). 수학(괴델), 컴퓨터과학(튜링)에서부터 시작되는 논의는 지 전공분야인 물리학을 휘몰아치면서 양자역학의 부분인 바로 그 지점을 향해 갑니다. 거의 소설을 써내려가는 식으로 양자역학과 우주론의 통합 이론인 뭔가의 이론에 대해 막 설명을 하는데, 그게 바로 마음의 신비이며, 슈뢰딩거 고양이의 생사를 결정짓는 의식의 관측이 바로 이것이고, 우리가 의식에 대해서 아무리 파고들어도 아직까지 모르겠는 그 이유가 바로 양자역학과 우주론의 통합 이론이 없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진짜로 허황된 소설을 읽는 기분인데, 이게 그 유명한 로저 펜로즈라니 어떻게 할 수도 없는 거 참 난감한 책 되겠습니다. 기본적으로 튜링머신에 대한 설명이 매우 잘 되어 있고, 고전역학과 양자역학과 상대성이론 따위의 물리학 이론을 나름대로 재밌게 설명해 놓았습니다(수식이 쪼끔 많긴 합니다). 한가지 유념하실 점은, 현재의 의식 연구자들은 이런 양자역학 이론 따위는 전혀 생각도 안 하고 있다는 겁니다. 왕따죠. 그도 그럴 것이, 나오지도 않은 물리학 통합 이론이 진리라고 말하고 있으니까요.


그밖에 추천하고 싶은 책

사실 제가 추천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은데 발번역이라던가, 너무 유명해서 추천할 가치도 없는 책들입니다. 그건 바로 '이기적 유전자'와 '괴델·에셔·바흐'죠. 제가 사실 도킨스라면 껌벅 죽는 도킨스 빠돌이인데, 이기적 유전자는 이거 뭐 추천해봤자 주둥이만 아플 정도로 유명한 책이라 걍 뺐습니다. 게다가 번역에 대해서 징징대는 놈들이 많아서요. 뭐 전 번역 별로 신경 안 쓰고 읽었습니다. 이 책으로 말씀드리자면, 마치 뒷통수를 제대로 후려갈기듯이 이 세상에서 가장 혁신적인 발상의 전환을 이루어 낸 책이라는 것입니다. 게다가 더 놀라운 점은, 그것이 정말로 진실의 한 단면이라는 것이죠.

괴델·에셔·바흐는 위에서 말씀드린 호프스태터의 책입니다. 이 책도 매우 유명한데 유명한 이유중에 발번역이 30%는 차지할 겁니다. 그만큼 번역에 대해서 욕을 많이 먹기로 정평이 나 있죠. 안타깝게도 원서 자체도 매우 어려운 편입니다. 괴델의 그 이론을 설명하려니 수식이 난무할 수밖에 없을 텐데, 뭐 어쨌든 그러저러한 이유로 인해 번역본을 읽고 제대로 이해했다는 사람을 들어본 적이 거의 없는 듯합니다. 아 물론 저는 번역본으로 읽고 나름대로 잘 이해했습니다(읽고 이해하는 데 35년이 걸리긴 했지만). 저도 이공계 출신인지라 영어보다 수식 읽는게 편해요. 한 가지만 더 말하자면, 이 책은 제가 지금까지 접해본 책 중에 가장 경이롭고 신비하고 싸이코천재같은 미친 책입니다.

덧붙여 제게 바통을 넘겨 주신 잡상 님께 감사드리고요, 저도 사실 이글루스에 서식하는 일부 병신(모기불 같은)과 그밖의 소위 블로거들의 친목질 세계에 전혀 관심을 가지지 않아서 이웃 블로거 같은 게 없습니다. 다음 주자 선정에 좀 시간이 걸리더라도 이해해 주세요.

추가: 다음 타자로 브루웩님이 선정되었습니다. 감사해요~

by 나비의일견식 | 2009/04/09 15:40 | 삶은 문화 | 트랙백 | 덧글(5)

71 - 평화로운 지구

그는 계속해서 연설을 이어갔다.

“...그러니까, 우리는 더 이상 모른체 할 수 없습니다. 더 이상 이 세상이 자본과 탐욕과 헛된 종교의 망상과 고질적인 시스템의 병폐로 인해 병들어가게 할 수는 없습니다. 어째서 우리는 멸종되어 가는 희귀새의 슬픈 울음소리를 곧 들을 수 없게 됨을 알고도 멍하니 바라보고 한탄해야만 합니까? 어째서 우리는 몇억 마리나 되는 소와 돼지와 닭과 그밖의 모든 더럽고 고통스러운 사육장에서 사육되는 동물들의 고통을 모른체하고 자신의 탐욕스러운 식탁을 채워야 합니까? 어째서 우리는 한 사람의 목숨이라는 것의 소중함을 확실하게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저 아무 것도 아닌, 한낱 도구에 불과한 시스템이 잘못 돌아가고 있기 때문에, 몇천만 명이 식량을 구하지 못해 굶어죽어가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도 모른척 해야 합니까? 어째서 우리는 우리의 미래를 지킬 확실하고 안전한 방법을 아는 데도 불구하고 그것을 실행하지 못하고 저 야만적인 자본주의의 노예들에게 우리의 파멸을 약속해야 합니까?”

장내는 고요했다. 그는 말을 이어 나갔다.

“마음가짐이 문제입니까, 시스템이 문제입니까. 우리는 해답을 알고 있습니다. 그것도 매우 아름답고 명쾌한 해답입니다. 누구나 이것의 좋은 점을 알고 있습니다. 누구나 이것을 실행하는 방법을 알고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그것을 실행하느냐 마느냐 하는 결단입니다. 마음가짐입니다. 저는 그 문제를 해결하겠습니다. 내일이면 모든 것이 완료되어 있을 것입니다. 우리의 지구는 여기 시간으로 내일 아침 9시에 역사상으로 최고의 평화로움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제가 약속합니다.”

확실히 전지구적인 효과를 발휘하는 것 치고는 눈 깜짝할 새의 일이었다. 연설이 끝난 시점인 오후 6시로부터 시작해 다음날 아침 9시에 이르는 15시간동안 모든 일들이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지구는 오전 9시에 그리고 그 이후로도 매우 평화로와졌다.

by 나비의일견식 | 2009/03/31 01:02 | 나의 픽션들 | 트랙백 | 덧글(4)

response to: 츤데레의 진화심리학적 해석에 필요한 추가 연구

츤데레의 진화심리학적 해석에 필요한 추가 연구

츤데레적 속성은 확실히 단기적 성 전략을 추구하는 남성 및 헌신성이 부족한 남성들을 내치게 되는 경향이 있습니다. 자칫 잘못하면 너무 과한 '체'로 작용할 수도 있는데요.

그만큼 츤데레 속성의 여성들은 자신이 가진 성적 매력에 있어서 자신이 있는 것 아닐까요? 데이비드 버스 등의 연구에 의하면 여성의 성적 매력을 촉발시킬 수 있는 단서가 되는 것들이 번식적 가치(reproductive value)와 젊음, 건강, 신체적 척도들(예를 들면, 허리 대 엉덩이 비율), 미의 기준들(예를 들면, 얼굴의 대칭성) 등과 같이 매우 많은 종류가 있다고 하였습니다. 제가 생각할 때 이러한 성적 매력을 불러일으키는 성질들에 대해 자신이 있는 여성들이 츤데레적 속성을 발휘하여 가치를 높이는 일을 수행할 것입니다.

어떤 유전자의 표현형이 '츤데레'라 해 봅시다. 이 유전자가 아무 때나 발현된다면 우연히 성적 매력이 떨어지는 개체 안에 들어갔을 때 번식하지 못하고 대가 끊길 것입니다.(예쁘지도 않은데 츤츤대니까) 츤데레 유전자가 어떤 조건에서 발현되느냐 하는 것이 중요할 것입니다(츤데레 유전자뿐만 아니라 다른 모든 유전자들이 그렇죠 아마). 만약 개체의 성적 매력이 남자들을 잘 꼬실 수 있을 정도로 충만하다면, 츤데레 유전자가 발현되어 자신과 자신의 자식들에게 충실한 남성들을 적절히 골라냅니다. 만약 개체의 성적 매력이 떨어진다면, 당연히 츤데레 유전자는 발현되지 못하고 조용히 묻혀 있겠죠.

나이가 들 수록 츤데레 속성이 줄어든다거나(주위의 노처녀들을 둘러보자면 이 가설이 충분히 납득이 가죠), 미모에 따라 츤데레 속성이 어떤 상호작용을 보이는가 하는 연구들을 시행하면 재미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츤데레는 어리고 예뻐야 진리.

by 나비의일견식 | 2009/03/24 22:14 | 장난조로 길을 묻다 | 트랙백 | 덧글(11)

츤데레의 진화심리학적 해석

여차하면 양육에 대해 어떤 책임을 지지 않고 내빼면서도 자신의 자식을 거의 무한정 낳을 수 있는 남성에 비해, 여성은 9~10개월의 임신 기간을 버텨낸 후에야 자신의 유전자를 가진 자식을 겨우 하나 얻어낼 수 있다. 때문에 여성은 짝짓기 전략을 추구할 때 남성보다 급작스런 성행위에 대해 거부감을 느끼고, 상대방 남성이 자신에게 9~10개월의 임신기간, 그리고 그 이후의 양육 기간에도 지속적으로 자신과 자신의 자식에게 자원을 투자해 줄 수 있는 남성을 고르는 전략을 주로 택한다.

이렇게 지속적인 자원 투자가 가능한 남성은 다른 여자에게 한눈팔지 않고 자신만을 바라보는, 즉 헌신적인 특성을 가진 남성이어야 하는데, 이것은 키라던가 자지길이라던가
하는 특성과는 달리 눈으로 직접 확인해 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때문에 여성은 남성의 헌신성을 테스트하기 위한 방법을 진화시켰는데, 그 중의 하나가 츤데레이다. 츤데레는 다가오는 남성에게 일부러 츤츤거리며 자신이 단기적인 성관계를 가지지 않는 사람임을 주지시키고(여기서 단기적 성 전략을 가지고 접근해 온 남자들은 한 번에 물러서게 된다), 그 후에도 여러 남성들의 관심 안에서도 지속적으로 츤츤거려서(여기서는 장기적인 성 전략을 가지고 접근해 온 남자들도 헌신성이 부족하게 되면 물러날 수밖에 없다) 마지막까지 끈질기게 남아 있는(즉, 헌신성이 강한) 남성을 택하게(데레) 된다.

이렇게 까다로운 성격을 지닌 츤데레가 오히려 남성들에게 인기가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남성들이 츤데레의 전략을 추구하는 여성에게 성적으로 문란하지 않은 성격을 기대하기 때문이다. 문란한 여성을 좋아하지 않는 남성 특유의 심리적 기제는 까딱하면 자신의 아이가 아닌 다른 남성의 아이를 대신 양육하게 될 지도 모르는(NTR) 큰 손실을 방지해 준다. (남성이 단기적 짝짓기 전략을 추구할 때는 좀 달라진다. 그 때는 남성은 문란한 여성을 좀 더 좋아하게 된다.) 츤데레와 짝짓기하기는 매우 어렵지만, 한 번 확실하게 데레를 받아 놓으면 그 후엔 부성 불확실성을 줄여주는 확실한 보험으로 작용한다.

사진은 오나니마스터 쿠로사와에서 츤데레의 정석을 보여주는 주인공의 상대역. 그녀의 저 바램과는 다르게 저런 모습이 딸감으로 쓰이는 것이 남성의 진화적 심리.

추가: 오덕계에서 츤데레가 그만큼 인기있다는 사실도 재미있는 주제. 그것은 그만큼 덕후들이 단기적 짝짓기 전략보다는 장기적 짝짓기 전략을 좀 더 추구한다는 소리 아닐까? 나이트나 클럽에 자주 간다는 덕후를 알거나 본 사람은 얼마 없다는 사실을 검증하기, 혹은 덕후들이 마법사가 잘 된다는 가설같은 것들을 좀 더 고려해 볼 필요가 있다.

by 나비의일견식 | 2009/03/24 16:25 | 장난조로 길을 묻다 | 트랙백(3) | 핑백(3) | 덧글(1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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